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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좋을 '너'의 이야기

아무래도 좋을 '너'의 이야기

‘처음’은 매번 낯설다. 만년필을 꺼냈을 때도 그랬다. 펜촉은 왜 이리도 날카로운지 펜이 아니라 칼로 종이를 갈기는 느낌이었다. 이리도 낯선 만년필을 처음 꺼내든 건, 정은우 씨 그러니까 인터뷰이 때문(?)이었다. 그는 여행하며 보고 느낀 것들을 만년필로 그려낸다. 소위 말하는 ‘금손’ 이다. 그림이라곤 ‘졸라맨’밖에 모르는 내 손재주가 원망스러워지곤 했다. 그러나 내 시기 아닌 시기는 그의 그림보다도 그의 감정, 생각의 깊이에 더 컸음이 분명했다.

 

 


<정은우, 북경 후퉁 Hu tong, 플래티넘 블루블랙+영웅 만년필>

 

대학내일 SNS 전략 제안 연구소 소장. 문화•예술 분야 파워 블로거. 여행지에서 느낀 단상과 만년필 스케치를 담은 <아무래도 좋을 그림>의 저자. 같은 듯 달라 보이는 세 가지 모습, 정은우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SK Careers Editor 류다혜

 

영화, 책 등의 리뷰부터 에세이까지. 블로그 속 수천 개의 글은 2007년부터 이어져 온 그의 작업을 아득하게나마 짐작케한다. 그 시작은 어떠했는지.

 

예전에는 그냥 재미있으니까 보고 좋으니까 듣고 그랬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이걸 왜 보고 듣고 있지? 이 콘텐츠를 왜 소비하고 있지? 하고요. 제 생각을 스스로 정리해보고 또 이에 대해 다른 이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100권의 책을 읽겠다’와 같이 수량적인 것도 나름의 의미는 있지만, 양에 상관없이 보고 읽은 것들에 대한 느낌을 정리해보는 게 굉장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콘텐츠 자체로만 소비하는 게 아쉽더라고요.

 

문화, 예술을 접할 때 특히 예민하게 뻗고 있는 더듬이가 있다면.

 

그런 건 없어요(웃음). 헌책방에서 산 책을 보면 밑줄이 그어져 있곤 하는데, 그걸 보면서 ‘뭐 이런 문장에 줄을 그었지’라는 건방진 생각을 했을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박완서 작가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 문장 자체가 셰익스피어나 피츠제럴드에 버금가는 문장이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그 문장을 읽을 때 가지고 있던 마음의 결핍에 그 문장이 와 닿았기 때문이라고요.

 

그러니까 어떤 영화나 책이 지금 제가 고민하고 있는 내용 혹은 흥미를 가지고 있는 내용들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이라면 자연스레 관심이 가고 글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본 모든 책이나 영화에 대해 리뷰를 쓰진 않아요.

 

자신을 소개하길 ‘취향이 자주 바뀌는 것이 취향’ 이라고. 현대인들은 보통 자주 바뀌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20대뿐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좋아하고 잘하는 걸 빨리 찾으려는 마음이 사람을 굉장히 조급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저는 그보다 세상에는 정말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는 걸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마음을 붙일 만한 흥미로운 것들이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데, 그걸 굳이 미리 정해놔야 한다는 강박감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데 집에서는 공무원 준비를 하라고 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사회에서 인정하는 무난한 일을 해야 되는 건지 저울질을 하는 건데, 이건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봐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잖아요. 서태지처럼요. 그런데 서태지는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을 거란 말이에요. 다른 예를 들면 박지성이 있어요. 박지성은 좋아하는 걸 포기하고 잘하는 걸 좇은 게 아니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계속 잘하는 거랑 좋아하는 걸 나눠서 생각한다는 거예요. 하나를 포기하고 다른 하나를 취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이 둘은 갈등의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둘을 대립 관계로 두는 거죠. 그러면 결국엔 좋아하는 걸 하는 거에 대해서 죄책감이 커지는 거예요. 내 흥미를 자극하는 게 생겼는데도 거기에 뛰어드는 것에 굉장한 죄의식이 드는 거죠.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지 말고, 견딜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훨씬 중요한 것 같아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앞의 예를 다시 데려와 볼게요. 영화감독이 못 되는 이유는 영화에 재능이 없어서도, 공무원이 싫어서도 아니라 영화감독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육체적, 정신적으로 감내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에요. 나보다 먼저 취업할 친구들을 봐야 하는 마음, 나에 대한 배려 없이 흘러가는 시간들, 가족들한테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 이런 것들을 견딜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지 내가 영화를 좋아하냐 마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생각해요. 견딜 자신이 있는 일을 하는 거예요.

 

또 하나는 먼저 시작한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 부담감이 매우 심한 것 같아요. 나보다 빨리 배우기 시작한 애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혹은 예고 출신, 미대 출신들을 내가 사회에 나가 따라잡을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고민하는데, 저는 먼저 하느냐의 여부보다 언제까지 이어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피카소나 고흐를 왜 화가로 기억하겠어요. 그 사람들이 언제부터 화가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단지 그들은 그림 그리다 죽었기 때문에 오늘날 화가로 불리는 거거든요. 그 사람이 어렸을 때부터 천재여서 위대해졌다는 게 아니라는 거죠.

 

비틀스가 길이 남을 음악을 많이 만들고 죽었으니까 비틀스인거지 비틀스가 언제 음악을 시작했는지 누가 자세히 알겠어요. 존 레논이 16살 때 비틀스를 만들었어요. 지금의 아이돌보다 훨씬 어렸을 때 만든 거예요. 심지어 16살의 존 레논이 멤버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거였어요. 하지만 그들이 영재였다는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잖아요. 결국은 마지막까지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찾아 나서는 게 중요한 거지, ‘난 이걸 좋아해’ 빨리 결정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거죠.

 


<정은우, 뉴욕 타임스퀘어, 로이텀 노트+플래티넘 뉴밸런스 만년필+펠리컨 4001 블루블랙잉크>


천천히, 구석구석, 보이지 않는 것들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 그림을 그린다고. 혹시 그 점이 상처로 다가온 적은 없는지.

 

상처받는 것보다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사랑한다’는 그 사람에 대해 알게 된다는 뜻 같아요. 사랑하다의 어원이 생각하다인데요, 사랑은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는 거지 그 사람의 나쁜 점을 고친다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인간은 절대 인간을 바꿀 수 없어요. 그러면 필연적으로 타인에게 고통을 주게 되죠.

 

인간은 다면적이라는 걸 인정해야 돼요. ‘저 사람은 나와 좀 다른데’ 이렇게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게 되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돼요. 이 사람의 모든 것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괴롭힘을 주는 거죠.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라는 영화가 있어요. 남주인공은 알코올 중독자예요. 중독자이니 직장이며 가정이며 다 파탄이 났죠. 그의 부인은 당연히 술을 끊으라며 성화고요. 그런데 알코올 중독이라고 해서 부인을 패고 이런 것도 아니에요. 그냥 술이 너무 좋은 거예요. 술을 끊느니 숨을 안 쉬겠다고 할 정도니까요. 여하튼, 그러다 보니 건강이 악화돼서 남자는 라스베가스로 떠나요. 그곳에서 사창가에서 일하는 여자를 만나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죠.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여주인공은 알코올 중독자인 남주인공에게 위스키를,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에게 일할 때 쓰라며 귀걸이와 목걸이를 선물하는 거였어요. 그걸 보며 느낀 게, 내 핑계로 이 사람을 바꾸려 하는 게 과연 사랑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너를 위해서, 네 건강을 위해서란 핑계로요. 그런데, 그 둘의 사랑은 그럼에도 사랑을 하죠. 결국 사람을 사랑하는 건 두 가지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사랑하거나 헤어지거나.

 

보통 인간의 삶은 일정한 루트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정해진 틀 속에서, 그럼에도 무엇 때문에 사는 거라 생각하는지.

 

일정한 루트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것도 다 타인의 기준인 것 같아요. 전 여기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전 단지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세상의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알아가고 싶어서 그렇게 하거든요.

 

여름이나 겨울은 ‘견디다’라는 표현을 써요. 봄은 ‘간다’라고 많이 표현하죠. 봄은 뭔가 아쉽기 때문에 그런 거겠죠. 사실 계절의 봄은 기다리면 오는 것이지만, 우리의 봄은 올지 안 올지 모르잖아요. 하지만 다행인 건, 저는 그 봄을 찾아낼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에요. 인생의 봄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저는 사실 그 재미로 사는 것 같아요. 실제로도, 인생의 봄이 훨씬 많다고 생각하고요(웃음).

 

20대 때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솔직히 기억은 잘 안 나지만, 타인이 내 삶에서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되지 않는 걸 그때부터 서서히 만들어간 것 같아요. 20대 때 가장 큰 고민은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였어요. 멋있는 사람이란 게 꼭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와 같이 유명인사는 아니었고 나름의 분야에서 만난 멋진 분들을 보며 그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정리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3가지 결론에 도달했는데요.

 

첫 번째는 비겁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비겁하지 않은 사람은 약점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약점을 포장하거나 숨기려 하는 게 아니라 쿨하게 인정할 줄 아는 거죠.

 

두 번째는 치근덕대지 않는 사람. 남자가 여자에게 혹은 여자가 남자에게 이런 차원을 넘어 직장 상사가 될 수도 있고, 부하 직원이 될 수도 있고요.

 

세 번째는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기 철학이 분명한 사람. 다른 이에게 피해를 입히는 철학은 차라리 없는 게 좋죠. 히틀러도 자기 철학 엄청 분명하거든요(웃음).

 

이 외에도 외모가 됐든, 학력이 됐든 남을 쉽게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요. 또 평가라는 게 보이는 것들로 점수를 매기는 것도 있지만, 입 밖으로 말을 내뱉는 걸 조심스러워하는 것도 중요한 점인 것 같아요.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를 혐오할 수 있지만, 혐오하는 거랑 입 밖으로 내는 거랑은 분명 다른 문제라는 걸 알아야 하죠. 사고야 개인의 자유지만 말로 뱉는 순간 타인에게 상처를 주게 되잖아요.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두 돌 지난 조카를 안고 입버릇처럼 해주는 말이 있어요. “태현아, 사람은 다 똑같은 거야. 피부색, 성별, 태어난 곳 등으로 차별해선 안 되는 거야” 이런 식으로요.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모두가 한 번쯤은 냉철하게 되돌아봐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인터뷰 동안 만년필을 쥐고 있는 모습. 또 그가 만년필로 써 내려간 글씨, 그림은 무엇보다 자연스러움이 묻어났다. 정은우 씨의 필압과 필기 자세에 따라 길들여진 만년필의 촉. 누구도 아닌, 그가 오롯이 지나온 발자취다. 우리는 모두, 지금 막 꺼내든 길들여지지 않은 촉의 만년필을 하나씩 쥐고 있다. 나만의 날을 새겨가는 건,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내 날은 어떤 모습일까. 또 당신의 날은 어떤 모습일까. 사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 갈 때 가더라도, 고민 상담쯤은 괜찮잖아?
네 고민 = 내 고민

 

 

‘맥주가 언제 가장 맛있어요?’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생각해봐요. 대부분의 우리는 포장하려고 해요. 맥주가 언제 맛있는지에 온갖 현학적인 이야기를 동원하죠. 하지만 자기한테 솔직해지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스토리텔링이 나와요. 목마를 때 처음 마시는 맥주, 그 한 모금이 제일 맛있는 거거든요. 하지만 이렇게 대답이 안 나오는 이유가 자기한테 솔직해지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제일 중요한 점은 어떤 사물과 현상에 대해 솔직해지는 것, 그리고 그 다음에는 자신을 구체적인 경험으로 들여다보는 거예요. 예를 들면, 맥주를 마실 때도 마시는 게 좋았다 보다 오감을 묘사해보는 거죠. 맥주의 향, 빛깔, 그때 친구들이 떠들던 소리, 들려오던 음악 등 맥주 하나지만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는 거죠. 자연스레 스토리는 더욱 풍성해지고요.

 

세 번째는 한 발 더 나아가 보기예요. 실제로 명문대학교 교수님께 들은 이야기인데요. 논술을 평가할 때, 논리성, 맞춤법 그리고 창의성을 본다고 해요. 비중을 30, 30, 30이라고 치면, 당락은 창의성에서 나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창의성이라는 게 전에 없던 글을 쓰라는 게 아니라는 거죠. 남들이 생각하지 못 했던 걸 한두 발 정도만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는 거예요.

 

예를 들면, 논술에 현대판 고려장에 대한 사회적 문제가 나왔어요. 대부분의 학생들이 논리적으로 유려한 문장을 쓰면서 마지막 결론으로 윤리 교육이 잘못돼서 그렇다, 삼강오륜이 땅에 떨어져서 그렇다 등의 자식을 나무라는 식의 이야기로 끝을 맺죠.

 

창의적인 친구들은 두세 줄 정도가 달라요. 버리고 오는 자식 마음은 오죽하겠냐 하는 거죠.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버리고 올 수밖에 없는 사정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걸 본 거예요. 이는 사회시스템이나 노인복지시스템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등의 논의의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거라 할 수 있어요.

 

이렇게 한 발 더 나아가서 생각해봐야 되는 것 같아요. 이게 스토리텔링이지, 특별한 경험에 목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특별한 경험이 특별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계속 이에 집착하게 돼요. 대부분이 ‘스토리텔링’하면 12개국에서 번지점프를 했다든지, 중앙아시아에 가서 해외봉사를 하고 왔다든지의 경험을 떠올려요. 사실 그건 돈 있고 시간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독특한 경험이 바탕이 되는 스토리텔링의 저변이 확대되면, 우리는 이러한 경험이 부족해서 스토리텔링을 못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쉬어요. 그런데, 진짜 스토리텔링은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보는 것부터 시작되는 거라고 봐요.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게 언제 닥쳐올지 몰라요. 저도 만년필을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분명히 말할 수 없거든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 시작이 아니라, 얼마나 오래 이어가느냐가 중요한 같아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아는 것에 목맬 것이 아니라 세상에는 내가 좋아할 만한 게 많다는 걸 깨우치는 게 훨씬 더 무게감을 가진다고 봐요.

 

 

 

‘왜 하는 걸까’라고 질문을 던져봤으면 좋겠어요. 나의 기준은 무엇일까 정도요. 돈을 좇기 위해, 꿈을 좇기 위해 아니면 그 둘 모두를 위해서라든지요. 그게 무엇이 됐던, 누구도 비난할 수 없어요. 개인의 가치는 모두 다르니까요.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질문을 마음속으로 품고 있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봐요. 왜냐면, 이 답을 찾으려 노력하게 될 거잖아요. 저는 그러면 된다고 봐요. 설사 그 문제에 답이 없다 하여도, 답이 없다는 답에 이르는 거라고 봐요. 삶이라는 게 딱 하나의 명확한 답이 나오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가 비난해요. 내 삶이 그렇다는데. 타인의 삶을 함부로 간섭해서는 안돼요. 히틀러도 원래는 그림을 전공했어요. 꿈은 화가가 되는 거였고요.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히틀러에게 재능이 없다고 했죠. 히틀러도 나에겐 재능이 없나보다 생각하며 그림을 그만 두고 군대를 간 거죠. 그래서 자기 사람들을 모아 폭동을 일으키려다가 경찰에 붙잡혀 감옥에 가게 됐고요. 감옥에서 <나의 투쟁>이라는 책을 쓰게 돼요. 그 책을 바탕으로 출소 후에 나치라는 당을 만들어서 1%의 불법도 없이 합법화된 방법으로 총통이 된 거죠. 그 이후에는 다들 잘 알다시피 잔혹한 역사가 있었고요.

 

히틀러의 그림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않았어도 역사는 달라졌을 수 있었겠죠. 타인에게 함부로 충고하면 그 개인도 망칠 수 있지만 인류 전체를 망칠 수도 있는 거라고 봐요. 때문에 쉽사리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린 너무 쉽게 그러고 있죠. 심지어 그게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