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진실 혹은 거짓
영화 <명량>을 다시 보며 배우는 역사 이야기
최단 시간 100만 관객 달성부터 1700만이 넘는 누적 관객수까지. 영화 <명량>의 기록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그만큼 너나 할 것 없이 <명량>에 대한 소감을 말하고 자신들이 배우고 느낀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제는 영화와 같은 매체를 통해 역사를 접하는 일이 흔해졌다. 과연 이러한 매체를 통해 우리는 얼마나 배울 수 있을까? 혹시 잘못된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을까? 역사 속에서 살펴본 영화 <명량>,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영화적 상상의 이야기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SK Careers Editor. 정석희
얼마 전 배설장군의 후손이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명량>의 제작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역사적 사실과 다른 내용을 영화에서 다뤄 고인의 명예를 실추 시켰다는 이유이다.
#. 영화에 나오는 배설장군의 이야기는 유족들의 말대로 허구일까? 과장된 사실일까?
Q 배설장군은 실존인물이다? (O)
그렇다. 배설(1551~1599)은 실존인물이다. 그는 1597년 경상우수사에 부임하여 영화에서도 언급되는 칠천량해전에 참가해 통제사 원균의 지휘를 받는다. 칠천량 해전 초반, 전투에서 패배하자 원균이 여러 장수를 소집해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하였으나 배설은 전세가 불리함을 직감한다. 이후 왜군이 공격해오자 전세를 관망하던 배설은 자신이 이끄는 12척의 배를 이끌고 한산도로 도망친다.
Q 배설장군은 거북선을 불태우고 이순신장군의 암살을 시도하였다? (X)
그렇지 않다. 실제 역사에는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위해 거북선을 건조했다는 내용조차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배설이 거북선을 불태운다는 이야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이순신 장군을 암살하려다 도망치는 영화 속 내용도 거짓이다. 난중일기에 배설에 대한 내용이 있다. “배설이 제 종을 시켜 소장을 냈는데, 세가 몹시 중하여 몸조리를 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몸조리를 하고 오라고 공문을 써 보냈더니 배설은 우수영에서 뭍으로 내렸다(8월 30일)”는 내용이 그것이다. 즉, 이순신 장군과 원한 관계가 있어 암살을 시도하고 도망친 것이 아니라 공식적인 허가를 받고 진영에서 이탈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이 칠천량때와 같이 겁을 먹고 꾀병을 핑계로 도망친 건지, 실제로 아팠던 것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두려움을 나타내던 배설의 기색이나, 진영을 나온 후 탈영병 신세가 되어 2년뒤에 참수 당한 것으로 보아 도망친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 그렇다면 배우 최민식이 분한 이순신 장군의 내용은
실제 역사와 영화 사이에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Q 한양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당하였다? (△)
일부 그렇지 않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 종군 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 맞다. 그러나 영화의 초반부에 나오는 이순신 장군의 고문 장면은 과장된 영화적 장면일 뿐이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국문은 한 차례 이루어졌으며 영화에서처럼 뼈가 으스러질 정도의 강도는 아니었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은 조정의 명에 따라 한양으로 끌려가면서도 대접을 받으며 이동했고 이동간에도 말을 타고 가는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백의 종군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영화의 극적인 효과를 위해 이순신의 고문장면과 고통스러운 모습을 표현한 게 아닐까.
Q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았습니다.” (O)
그렇다. 이 말은 이순신 장군이 삼도 수군통제사에 복직된 후, 수군을 없애고 권율 장군의 육군에 합세하라는 선조의 명에 대한 답변으로 한 말이다. 그가 선조에게 올린 장계를 보면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 출사력거전 즉유가위야(出死力拒戰 則猶可爲也).”라는 부분이 있다. 즉, “신에게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으니, 죽을 힘을 다하여 막아 싸운다면 능히 대적할 방책이 있사옵니다.” 라는 뜻으로 다가올 명량해전의 의지를 보인 것으로 알 수 있다. 이순신이 올린 장계의 내용은 수군을 폐지한다면 오히려 왜군이 해안을 통해 한강까지 일격에 진격할 것이므로 자신이 맞서 지키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Q 탐망꾼을 실제로 활용했을까? (O)
그렇다. 영화에서는 이순신장군이 탐망꾼을 통해 왜군의 동향을 파악하는 내용이 나온다. 실제로도 이순신장군은 별망꾼을 활용한 정보수집을 중요시 여겼다. 배우 진구가 맡은 탐망꾼 ‘임준영’이라는 인물도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 하지만 임준영이 명량해전에서 사망했다는 점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임준영이란 이름이 명량해전 이후에도 난중일기에 계속 언급되기 때문이다. 물론 배우 이정현이 맡은 임준영의 부인 역할은 영화적 상상의 인물이다.
#. 마지막으로 영화 <명량>의 하이라이트, 명량해전에 대해 알아보자.
영화에서도 긴 시간을 할애한 만큼 다양한 요소가 등장한다.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인지 배워보자.
Q 대장선 홀로 앞장서서 왜군 함대를 상대했다? (O)
그렇다. 해전 초반, 상대적 열세에 겁을 먹은 조선 수군의 배들이 뒤로 물러서게 되었고 그 결과 이순신장군이 탄 장군선 만이 앞장서서 왜군 함대를 상대한다.
“뭇 장선들을 돌아보니, 물러나 먼 바다에서 관망하며 나아가지 않고 배를 돌리려 하고 있었다.” -『정유일기』 9월 16일
거센 물살에 맞서면서도 홀로 왜군을 상대하며 평온함을 유지하던 영화 속 이순신 장군과는 달리 실제로는 도망치려는 부하장수들에게 분노를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부하장수 안위와 중군장 김응함에게 한 말을 보자.
“안위야, 싸우다 죽고 싶으냐!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달아난다고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정유일기』 9월 16일
“너는 중군이 되어서 멀리 피해만 있고 대장을 구하지 않았으니, 죄를 어찌 면하겠느냐! 당장이라도 처형하고 싶지만 적의 기세가 또한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하겠다!” -『정유일기』 9월 16일
대장선의 고군분투에 부함 함선들이 돌아와 왜적을 상대하였고, 격렬한 해전이 계속되었다.
Q. 백병전은 실제로 일어났다? (O)
그렇다. 하지만 백병전은 대장선이 아닌 안위의 배에서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난중일기에 따르면 대장선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단 2명, 부상자가 3명이라고 한다. 백병전이 발생했다면 더 많은 사상자가 나왔어야 한다. 또한 이순신은 안위의 배에 왜선 3척이 접촉했다고 밝히는 것으로 보아 실제로 치열한 백병전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백병전이 주요전술인 왜군과 달리 주로 멀리 떨어져 화포를 쏘는 조선수군으로서는 백병전이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Q. 백성들의 도움으로 이길 수 있었다? (O)
그렇다. 명량해전이 시작되기 전, 상대적으로 열세인 아군의 함선을 돕기 위해 어선 수 십 척이 후방에서 마치 함선인 듯 위장 전술을 펼치기도 한다. 아마 영화 중 소용돌이에 빠진 대장선을 구출하기 위해 백성들이 도와주는 장면은 여기에서 따온 듯 하다. 또한 강강수월래 역시 명량해전에서 백성들이 만든 분산작전에서 비롯된 놀이라고 알려져 있다. 언덕 위에서 소리치며 적군을 혼란스럽게 했던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비슷하게 백성들이 주의를 끌기 위해 언덕에서 소리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의미와는 약간 다르지만 연상되는 장면이다.
석희's Tip
명량해전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천행이었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도 전투가 끝난 후 이와 비슷한 말을 하였다고 한다. 적시에 나타난 백성들의 도움과 조국을 지킨다는 의지의 정신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의 승리가 있기까지 피나는 노력과 철저한 상황 분석이 있었음을 빼놓을 수 없다. 역사를 배운다는 건 이러한 노력을 배운다는 게 아닐까. 단순히 ‘이순신 장군은 위대해’라는 소감보다는 그 안에 어떤 노력과 의지가 있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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